남해 독일마을
남해 독일 마을..
금요일에 수업이 몰려 있는 rä의 일정 때문에 아침 일찍 서울로 돌아왔어야 했다.
늘 계획 대로만 움직이면 될 텐데... 무슨 욕심이신지 사는 게 늘 무리수의 연속이다.
물론 제안은 남편님이 내셨다.
섬진강, 순천만까지 온 김에 조금만 더 남쪽으로 내려가
"한국에서 아름다운 드라이브 길" 중에 한 곳이라는 남해도 해안 도로를 거쳐
말로만 듣던 독일 마을도 가 보자는 것이었다.
생각 같아선 독일에 가고 싶지만, 지금 당장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독일마을이라도 가 보시자나?
독일 마을 ...
매스컴을 통해 이미 많이 알려진 곳이다.
60년 대 독일로 떠났던 광부와 간호사들이 고국 땅에 돌아와 터 잡을 수 있도록 정부에서 마련한 곳이다.
그 당시 파독은 귀한 외화를 벌어들여 어려운 나라 살림에 기여한다는 자부심도 자부심이려니와
각자의 삶에도 가난을 떨쳐 버릴 황금 같은 기회로 여겨졌고
그래서 경쟁률이 수십 대 일이었다 한다.
표면상으로는 반지르르한 인생역전의 기회지만 말도 못할 어려움이 왜 없었으랴!
그렇게 고국을 떠난 분들은
말도 통하지 않는 타관 땅에서 그나라 국민들이 꺼려하는 3D에 종사하며
타향살이의 설움과 외국인에 대한 무시를 이겨내고
그 나라 사람들보다 조금 덜 자고 조금 덜 먹어가며
오로지 고향에 있는 가족들과 낯선 땅에 새로 꾸린 가정의 내일을 위해
아끼고 절제하며 그렇게 아주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독일에 살면서 본 그 분들은 그랬다.
늘 고향을 그리워하고, 2세들의 안정된 삶을 위해 마음 졸여가며...
각자의 행복을 찾아 떠난 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한 때는 나라의 큰 보탬이었던 그 분들을 정부에서 잊지 않고
고향 땅 남쪽 끝에나마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다니 고마운 일이다.
독일마을 원예 예술촌 공원 앞에 아주 예쁜 카페가 있었다.
Coffee Bremen
그곳 사장님 내외 분은 40년 전 Duisburg로 가셨던 분들인데
나의 추측이 맞는다면 필경 광부와 간호원이셨을 게다.
그곳에서 젊은 시절을 열심히 보내고 연금 생활자로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한다.
물론 독일에도 집이 있어 (아마 아이들 때문에 정리하고 들어오지는 못하셨을 것이다.)
일년에 한 두번은 갔다 오신다 한다.
유학생으로 Bonn에서 10년 넘게 살았다고 하니
얼마나 반가워하시던지...
카페 앞까지 쫒아 나오셔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주셨다.
사람 좋아 보이던 사장님은,
40년 가까이 독일에 살며 늘 고향을 그리워만 하던 마음이 마침내 그립던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40년 세월을 보내며 익숙해진 또 다른 고향을 그리워 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며 뜻 있는 웃음을 지으신다.
우리는 그저 10년 유학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아
어느새 나의 마음도 뭉클해졌다.
그래도 사장님!
고향이 두 개인 것은 좋은 일 아닌가요?
사람이 그리워할 것이 많은 것도 좋은 일 아닌가요?
Beethoven Trio No.4 in B flat major Op.11
"Gassenhau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