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화

뜰에 해바라기가 피었내.... 법정

Vega7070 2012. 1. 28. 17:09

 

 



 


 

 


 

뜰에 해바가기 피었네-법정 

 

 

자다가 깨어나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다가 이내 털고 일어나 이 글을 쓴다.

일어날 시간이 되지 않았더라도 일단 깨어났으면 더 뭉갤 필요가 없다.

눈이 떠졌는데도 잠자리에서 뭉그적거리면 게으른 버릇밖에 길러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 다음 고히 잠들 시간이 얼마든지 있다.

살만큼 살다가 신체적인 동작이 멎었을 때, 친지들이 검은 의식을 치르면서 '고히 잠드소서' 어쩌고 하면서 작별의 인사를 할 것이다.

그때 가면 평생에 모자라던 잠을 온몸이 다 삭아질 때까지 실컷 잘 수 있다.

그러니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의 시간을, 깨어있는 맑은 정신으로 보다 유용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기상나팔'은 이만 불고, 오늘 마음에 고인 말을 풀어놓으려고 한다. 며칠 비워두었다가 오두막에 돌아오니 뜰가에 해바라기가 피어 있었다.

손수 씨를 뿌려 가꾼 보람이 해바라기로 피어난 것이다. 부풀어 오르는 이런 기쁨은 스스로 가꾸어 보아야만 누릴 수 있다.

 

이 해바라기의 고향은 암테르담의 고흐 미술관이다.

해바라기를 즐겨 그린 태양의 화가,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나오다가 매점에서 파는 씨앗을 샀다.

내가 이 오두막에 들어와 살면서부터 해마다 꽃이 피는 해바라기인데, 처음 피어난 꽃을 대하면 마음이 사뭇  설렌다.

철새들의 첫소리를 들을 때처럼, 나는 이런 사소한 일에서, 살아가는 잔잔한 기쁨을 누리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부터 해질녘이면 커다란 두꺼비 한 마리가 섬돌에 엉금엉금 기어나와 내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오, 네가 또 왔구나' 하고 아는 체를 한다. 낮에는 눈에 띄지 않다가 해질녘이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나는 이 두꺼비한테 '너는 무슨 재미로 이 산중에서 혼자 사느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한다.

두꺼비는 아무 대꾸도 없이 내 말을 끔벅끔벅 들어주기만 한다. 이렇게 지내온 사이에 우리는 한집안 식구처럼 길이 들었다.

두꺼비는 내가 바짝 다가서도 나를 경계하지 않는다. 나는 두꺼비에게 먹을 것을 주고 싶은데 그의 식성을 몰라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땅에 엎드린 채 그 동작이 굼뜬 이 두꺼비도 파리나 물것을 잡아먹을 때만은 그 입놀림이 얼마나 빠른지 모른다. 

'넙죽넙죽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한다.'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가만히 엎드려 미동도 하지 않다가 파리나 물것이 가까이 오면, 날름 혀를 내밀어 순식간에 잡아먹는다.

굼벵이도 뒹구는 재주가 있다더니 이 두꺼비한테도 물것을 잡아먹는 재주가 아주비상하다.

모든 생물은 저마다 살아가는 묘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산중은 아침 저녁으로 많이 서늘해졌다.

이제는 거르지 않고 날마다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야 할 때가 되었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영롱하게 돋아나고 은하수도 선명하게 흐른다.

숲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도 가을임을 알려오고 있다.

별밤 아래서 나는 밤이 이슥하도록 노래를 불렀다.

곁에 들을 사람 없으니 마음놓고 18번, 19번을 죄다 쏟아 놓았다.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즉흥적으로 작사, 작곡을 해서 부른다.

그 날 일어났던 일을 오페라 가수처럼 노래로 부르고 있으면 아주 즐거 진다.

반주는 시냇물 소리가 알아서 해준다.

이런 별밤이 아니라도 나는 설거지를 할 때 곧잘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흥에 겨우면 목청을 돋워 오두막이 들썩거리도록 창을 부르기도 한다.

 

영화 <서편제>를 보고 나서 한 때는 입버릇처럼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이로다.

봄은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  나도 어제는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하구나......'로 시작되는 <사철가>를 불렀다.

한참을 부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슬퍼져서 목소리가 촉촉히 젖을 때도 있었다.

슬플 때는 슬픈 노래로 위로를 삼고, 기쁠 때는 기쁜 노래로써 그 기쁨을 드러낸다.

살아있는 모든 생물은 저마다 노래를 지니고 있다. 사람과 새들만 아니라 풀잎도 바람을 타고 노래를 한다.

인간의 입에서 살벌하고 비릿한 정치와 경제만 쏟아져 나오고 시와 노래가 흘러나오지 않는다면 그의 가슴은 이미 병들기 시작한 것이다.

먹고 마신 그 입에서 꽃향기 같은 노래가 나와야 한다.

 

사는 즐거움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그 즐거움은 누가 가져다 주는가.

즐거움은 우리 스스로 만들고 찾아내야 한다. 사는 일이 재미없고 시들하고 짜증스럽고 따분하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한대로 그 삶은 재미없고 시들하고 짜증스럽고 따분한 일로 가득 채워진다.

우리들의 일상이 따분할수록 사는 즐거움을 우리가 몸소 만들어내야 한다.

즐거운 삶의 소재는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우리 곁에 무수히 널려있다. 우리가 만들고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잠자리에서 뭉그적거리지 않고 털고 일어나 이 '글 쓰는 숙제'를 식전에 마치고 나니 아주 개운하다.

이 개운함이 오늘 하루의 내 삶을 받쳐줄 것이다.

당신은 사는 일이 즐겁지 않은가.


1996 <오두막 편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