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교

[스크랩] 어머니의 그륵(그릇), 어머니의 귀

Vega7070 2006. 9. 30. 17:30

 

할머니[2].jpg

할머니(1991/72.5 x 90/종이에 수채)

 

 

 

 어머니의 그륵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있도록 불러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포구의_할머니[1].jpg

포구의 할머니(1988/75 x 56/종이에 수채)

 

 

 

 어머니의 귀                                               

 
소쩍새 우는 봄밤 내 귀는 소쩍소쩍 듣는데
어머니의 귀는 솥적다 솥적다 듣는다
솥이 적어 굶어죽은 슬픈 며느리가 운다며
가난했던 어머니 배고팠던 슬픔에 젖는다

 

뻐꾸기 우는 여름밤 내 귀는 뻐꾹뻐꾹 듣는데
어머니의 귀는 풀국 풀국 듣는다
풀이 없어 풀 빨래 한 번 못하고 죽은 며느리가 운다며
고달팠던 어머니 눈물 훔친다

 

서러운 며느리였던 어머니도
이제는 며느리를 둔 시어머니

 

산비둘기 우는 가을밤 내 귀는 구구구구 구구구구 듣는데
어머니의 귀는 식구 다 죽은 홀아비 새되어 운다며
어미 죽고 구구구구 자식죽고 구구구구
또 그렇게 슬피 듣는다

 

 

어머니(1982/55.7 x 37.5/종이에 콘테,수채)

어머니[1].jpg

 Moon River

 

출처 : 어머니의 그륵(그릇), 어머니의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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